CROWN INTERVIEW

인터뷰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고객들을 엄선하여
크라운구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 입니다.

Hong Mi Hwa

홍미화 | 패션 디자이너

 

EDITOR

1994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을 시작으로
도쿄, 뉴욕을 매료시킨데 이어 네팔과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예술관을 제시하고 있는 1세대 패션 디자이너, 홍미화

국경, 인종, 문화를 넘어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자연을
주제로 가장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 그녀.
인간이기에 두려울 수밖에 없는 영역 ‘도전’
그 미지의 세계를 끝없이 항해하며 얻은 그녀만의
신념을 통해 세대의 전환에도 회자되는 미학을 만나보자.


1 패션 디자이너로서 특별히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저는 섬유의 도시인 대구에서 태어났고 부모님 또한 의류 사업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원단을 가지고 노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제겐 부모님의 일터가 놀이터나 다름없었죠.
작은 천 조각들을 매일 새로운 스타일로 몸에 두르고 뛰어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천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남들에게는 원단에 불과했지만 저에게는 가장 재밌는
장난감이었으니 옷을 디자인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의상 디자이너에 대한 단 한순간의 의구심도 없었고 저는 이 직업이 저의 숙명이자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 후 굴지의 패션회사와 함께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런칭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첫사랑과 지금까지 이별의 순간 없이 쭉 같은 길을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2 처음으로 해외 패션쇼를 준비하셨을 때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패션 브랜드에 있을 당시 제 개성을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결국 브랜드를 그만두고 저만의 색을 찾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났습니다.
그곳이 저의 데뷔쇼가 개최된 곳이죠. 세계 패션의 중심으로 불리는 파리의 패션쇼는 주로 3월과 9월에 열리는데 저는 7월을 선택했어요. 7월은 유럽 휴가 기간이라 기자분들을
모시기 어려웠지만 그만큼 제 퍼포먼스에 이목이 집중될 수도 있고 물론 자신도 있었기에 계획대로 진행했습니다. 파리 동부 교외에 위치한 빈센트 숲속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린 뒤 반딧불이 500여 마리를 날리며 화려하게 막을 열었죠. 반딧불이 외에도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조명을 기둥에 달고, 남자 모델은 지게를 지고 나오는가 하면 파리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서양의 조화로움을 가득 담아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반딧불이의 반짝임과 관객들의 환호가 더해진 현장의 모습이 어제와 같이 생생합니다.

3권위 있는 패션 위크 개최지를 뒤로하고 네팔에서 패션쇼를 계획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0대와 20대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는 옷이 ‘멋’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어디서든 눈에 띄는 사람이었죠. 30대가 되니 제 자신보다는 타인이 풍기는 실루엣과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그 사람의 장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40대가 되니 흔히 ‘의, 식, 주’라 일컬어지는 인간 생활의 기본적 요소들로
관심이 확장됐습니다. 그래서 ‘라이프 스타일 디자이너’로 영역을 넓혀갔고 그 일환으로 인테리어 프로젝트도 다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간이 사는 모습은 옷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더군요. 다양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인 60대가 되니 제가 가장 잘하는 일, 패션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고 그중 소외받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제 혼이 담긴 패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화려한 도시들과는 정반대의 매력에 매료되어 네팔에서 패션쇼를 계획하게 됐습니다.

4 네팔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네팔 지역의 친환경 섬유를 조사하다가 ‘네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네틀은 네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천연섬유로 꼬임을 약하게 주면 울, 강하게 주면 린넨 효과를 내는 등 활용도가 높은 섬유죠. 다만, 야생 상태로 채취하기 때문에 공급이 제한적인 것이 취약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도 네팔 본연의 아름다움이 녹아든 네틀로 패션쇼를 차근차근 준비하던 중 그 해 진도 7.9의 강진이 일어나 8천5백 명 이상이 사망하고 네팔의 수도는 폐허가 되다시피 무너져버렸습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은 네팔 사람들을 생각하니 몸이 저절로 움직이더군요. 상업적인 패션쇼가 아니었던 만큼 그들을 위로해 주자는 마음으로 강행했습니다.

5네팔에 이어 아프리카에서도 특별한 추억을 만드셨습니다. 인상 깊었던 순간이 궁금합니다.

네팔에서 돌아온 후 3년을 준비하여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남아공 도시와 가나의 쿠마시까지 4개 지역에서 패션쇼를 열고 돌아왔는데 그중 아프리카 특유의 에너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패션쇼는 가는 곳마다 처음 보는 행사라며 워킹 도중 관객이 합류하는가 하면 음악과 상관없이 환호성을 지르고 마치 모두가 함께 호흡하는
분위기가 축제를 연상케했습니다. 옷을 통해 원초적인 형태의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 관객과 모델의 구분 없이 다양한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그곳에서 저는 감동을 넘어
번뜩이는 전율을 경험했습니다. 평생 패션을 통해 제 자신을 표현했지만 패션의 영역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6 앞으로의 행보가 매우 기대됩니다. 혹시 정해진 다음 꿈의 기착지가 있으실까요?

물론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인들과 패션을 통해 창조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표지만 우선 제 항해의 다음 도착지는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을 포함한
남미 지역으로 정했습니다. 남미의 티베트와도 같은 볼리비아는 압도적인 안데스산맥의 풍경과 신비한 고대 문명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어 트렌디한 도시와 정반대의 매력을 지니고 있죠. 네팔과 아프리카에서 얻은 패션의 본원적 미학을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곳, 볼리비아에서 투명한 적막을 배경으로 패션
그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펼쳐 보일 날이 벌써 기대됩니다. 형식이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평온한 자연에 맡긴 채 제 자유로운 영혼을 마음껏 꺼내 볼 생각입니다. 그것이 네팔, 아프리카를 누비며 제가 발견한 저만의 패션 세계입니다.

7 마지막으로 크라운구스에 대해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패션과 리빙은 시작되는 뿌리가 같다고 생각합니다. 두 영역은 모두 ‘예술’에서 비롯되며 그런 점에서 매년 패션,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크라운구스의 행보는 참 인상 깊습니다. 패션이 사람을 디자인하듯 리빙은 공간을 디자인하죠. 또한, 공간은 사람이 영위하고 있으니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인지 심연의 아름다움을 베딩으로 풀어내고 있는 크라운구스의 작품 세계는 제가 추구하는 바와 닮아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리빙과 패션, 두 분야의 간극에서 새로운 영감이 떠올라 준비하는 패션쇼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각자의 바운더리를 넘어 창조적 시선에서 만물을 바라보는 개체들이 되면 좋겠습니다.